동아일보 DB

《대입을 바라보는 고교생들이 가장 주력하는 핵심 과목은 오랜 기간 수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어가 새로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최상위권 내에서도 국어 성적에 따라 대입 운명이 엇갈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해선 수학만큼이나 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요해진 국어를 잡기 위해 고교생들도 최근에는 국어 학습 비중을 높이고 국어 전문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를 적극 찾아 나선다. 그럼에도 국어를 공략하기란 쉽지 않다. 단순 지식보다는 독해력과 사고력, 추론 능력과 같은 역량을 평가하는 과목 특성 탓에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기 힘든 데다 국어 시험의 난도 자체도 과거에 비해 한층 높아졌기 때문. 여전히 초‧중학교 단계에서는 수학, 영어에 밀려 국어 학습에 소홀한 것도 뒤늦게 국어에 발목을 잡히는 주요 배경이다.

국어, 과연 지금처럼 수학이나 영어 뒷전에 놓아도 되는 과목일까. 에듀동아는 <대입 승부처 과목? 수학도 영어도 아닌 국어… 초등부터 잡아라!> 시리즈를 통해 수능을 비롯한 대입의 핵심 과목으로 급부상한 △국어의 달라진 위상을 짚어보고 △학생들이 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와 △바람직한 국어 학습 방향을 3편에 걸쳐 소개한다.》 



#1. 과학고에 다니던 A는 자신이 원하는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무려 삼수를 했다. 2학년을 마치고 뒤늦게 정시로 방향을 바꾼 A의 발목을 잡은 과목은 다름 아닌 국어. 다른 모든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아도 소용없었다. 국어가 번번이 2등급에 머물렀기 때문. ‘86점, 92점, 94점’. 단 8점의 국어 점수를 올리기까지 A는 꼬박 3년의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의대에 가려는 학생들과 수시 상담을 하다 보면, 다른 영역에선 모두 1등급이 나오는데도 유독 국어만 2~3등급에 걸쳐 있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추기가 어려운 상황이 많아요. 전교권 수준의 우수한 학생들인데도 그래요. 학생들은 남은 기간 열심히 공부하면 등급 기준을 맞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웬걸요? 수능 때까지 반등을 못하는 경우가 많죠.” (조정숙 종로학원 수시전략연구소장)

○ 최상위권도 극복하기 어려운 국어의 늪

   ‘독서’ 오답률 높은 문항 독식, “문제는 독서야”

   국어 어려울 땐… 독서 문항 변별력 커

단기간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 ‘국어의 늪’은 최상위권이라도 쉬이 피해갈 수 없다. 2학년 때까지 꾸준히 1등급의 성적을 받던 학생들도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수능형 문제를 풀기 시작하면 2~3등급으로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고, 결국 수능 때까지 반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토록 수능 국어가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독서’ 때문이다. 수능 국어는 △화법 △작문 △언어(문법) △문학 △독서, 다섯 개의 세부 파트로 나뉘고 △화법 및 작문 10문항 △언어 5문항 △독서 15문항 △문학 15문항씩 총 45개 문항이 출제된다. 올해 치러진 6, 9월 수능 모의평가에서 국어 오답률 상위 10개 문항 중 절반을 독서 문항이 차지했다.
 

특히 독서가 어려울수록 국어의 변별력도 커진다. 올해보다 국어가 더 어려웠던 최근 2년간 수능에선 오답률 상위 10개 문항 중 80％를 독서 문항이 독식했다. 최상위권과 상위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최종 보스는 국어, 그 중에서도 독서인 셈이다. 
 

○ ‘불국어’에 비하면 분명 쉬워졌는데… 결과는 그대로

   올해 모평 독서, 긴 지문‧심화 개념‧고난도 문항 ‘3無’ 시험

   9월 모평, 지난해 수능보다도 등급컷 낮게 형성

국어의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최근 시험에선 독서 문항의 난이도가 다소 조정된 모습을 보인다. 2019학년도 수능을 강타한 ‘불국어의 해’와 비교하면 최근 모의평가의 국어, 그 중에서도 독서 파트는 분명 쉬워졌다는 것이 국어 강사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여전히 국어의 늪에 빠져있다.

보통 국어가 어려울 땐 비문학 지문의 길이가 길고 지문의 내용도 여러 개념이 조합되어 있는 심화 개념을 주로 다룬다. 예를 들어 행복추구권이 헌법에 보장된 보편적인 기본권을 설명하는 ‘기본 개념’이라면 사적 자치의 원칙, 계약 체결의 자유는 행복추구권이라는 기본 개념에서 파생된 ‘심화 개념’이다. 이처럼 다양한 층위의 개념이 조합된 심화 개념을 다루면 이를 설명하는 지문의 구조도 한층 복잡해진다. 여기에 더해 최상위권과 상위권을 변별하는 고난도 문항이 평균 3개가량 출제되던 것이 최근 어려웠던 국어 시험의 대체적인 출제경향이었다.

그러나 올해 모의평가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경향에서 빗겨나 있다. 우선 비문학 지문의 길이가 짧아졌고 지문 속 정보도 여러 층위의 개념들로 이뤄진 심화 개념보다는 기본 개념 위주로 다루면서 독해의 난도가 낮아졌다. 거기다 흔히 ‘킬러문항’으로 불리는 고난도 문항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도 올해 9월 모의평가의 원점수 기준 등급컷은 △1등급 90점 △2등급 84점 △3등급 77점 등을 기록하며, 다소 어려운 축에 속했던 지난해 수능 당시의 △1등급 91점 △2등급 85점 △3등급 77점과 비교해 오히려 더 낮아졌다.

○ 국어가 쉬워져도 여전히 어렵다? ‘읽기’가 문제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 읽기? ‘1분컷’

   키워드만 가지고 주관적으로 해석… 같은 글, 다른 해석

지문이나 문항의 전반적인 수준이 하향 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국어를 어려워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현장의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요즘 학생들의 ‘읽기’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랫동안 수능 국어 강의를 하며 학생들의 학습 과정을 지켜봐 온 백승렬 종로학원(강남본원) 국어 강사는 학생들이 국어를 어려워하는 원인을 이렇게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뉴스 기사를 읽는 학생들 모습을 보세요. 원래 문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아래로 수직 읽기를 합니다. 빠른 속도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한 문장을 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1초 남짓 될까요? 문장을 읽지 않고 사실상 키워드만 보는 겁니다.” (백 강사)

실제로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만나는 세상에선 긴 글이 인기가 없다. 글이 조금만 길어져도 ‘한 줄 요약’, ‘세 줄 요약’을 찾는 댓글이 달린다.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의 상당수가 이런 식이다. 깊이 사유하지 않고 공들여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1500자 남짓의 비문학 지문을 쉽게 읽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마트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다양한 읽기의 경험이 부재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백 강사는 학생들이 읽기만 할 뿐 제대로 독해(讀解)를 못하는 단편적인 예로 ‘같은 글, 다른 해석’을 꼽았다. 똑같은 비문학 지문을 읽혀도 학생마다 해석이 제각각이라는 것. 지문의 각 문장과 문단은 유기적으로 얽혀 의미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런 행간을 이해하지 않고 파편적으로 흩어진 개별 문장 단위로만 읽으면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볼 수 없다. 위에서 아래로 키워드 중심의 수직 읽기를 하면서 이 키워드만을 재조합해 해석하려다 보니 해석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고, 이 빈 공간에 주관적 해석이 더해지니 실제 글의 내용과는 다른 독해 결과가 나온다.

비문학 지문을 풀 때 국어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은 방금 읽은 문장이나 단락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문제를 만날 때마다 다시 지문으로 돌아가 읽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 역시 글의 의미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 그저 ‘읽기’만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 배경지식 없이도 비문학 독해는 가능하다? 잘못된 오해

   ‘배경지식 無’ →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

   기본 배경지식 있어야 지문 속 복잡한 개념 이해도 수월해져

읽기 경험의 부재가 낳는 문제는 또 있다. 바로 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기본적인 입장은 ‘수능의 모든 문항은 배경지식이 없이도 풀 수 있다’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백 강사가 말하는 ‘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지식’도 교과서 밖에서 배워야 하는 대단한 학설이나 전 분야를 망라하는 상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중등 교육과정 수준에서 다루고 있는 기본 개념과 상식 정도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효소와 같은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면 생명과학 분야의 지문이 말하는 바를 빠르게 캐치할 수 없습니다. 배경지식이랄 게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인체의 모든 근육이나 조직을 구성하는 대부분 요소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효소도 대부분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효소는 그 자체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요소들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정도만 알고 있어도 지문에 등장하는 효소와 관련된 낯선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기가 훨씬 쉽거든요. 그런데 이런 배경지식이 부족한 거죠. 학생들은 ‘효소’란 말을 자주 들어봐서 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작 확인해 보면 ‘몸에 좋은 것’ 정도로만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죠.” (백 강사)

국어 강사들이 물리, 화학, 경제, 법학 등 비전공 분야까지 넘나들며 비문학 지문을 공들여 풀이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을 어떤 방식으로 독해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비문학 지문에 등장한 기본 개념들을 이해하고 학습하고 넘어가는 것 자체가 국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차원적인 기본 개념만 다룬 글은 독해만 잘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여러 층위의 심화된 개념이 등장하는 복잡한 지문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백 강사는 “많은 학생들이 어휘의 뜻이나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한 지식 없이 독해법만으로도 글을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온전히 독해로만 이해하고 풀 수 있는 것은 하위 수준의 문제”라면서 “시험이 어려워지고 심화 개념이 나올수록 지문에 등장한 개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국어를 어려워하는 원인을 알았다면 이에 따른 해결책도 알아봐야겠지요? <대입 승부처 과목? 수학도 영어도 아닌 국어… 초등부터 잡아라!> 시리즈 3편에서는 국어 학습의 올바른 방향을 짚어봅니다.

▶에듀동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출처: 에듀동아(http://edu.donga.com/?p=article;ps=view;at_no=20201019095409422073;titleGbn=;page=1)